주로 국내 학자들은 일본의 책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서로 다른 비전과 정책의 존재 이유는 너무 당연하다.타협과 연속성의 공동 성취 그러나 국가공동체 발전의 관점에서 볼 때 타협과 연속성이 가져다준 공동의 성취에 대해서는 균형의 눈이 꼭 필요하다.
내각제 합의와 파기가 대표적이었다.5·18특별법의 제정은 광주정신 및 김대중과의 공동 원칙을 의미했다.객관적 지표로 볼 때 초기 민주정부와 지도자들에 대한 기존의 강한 지역주의적 시각과 의심은 우리 자신의 집단적인 감정적 편견과 오해였다.
오늘의 시점에 민주화를 이룬 대전환기의 몇몇 핵심 단면과 유산을 돌아보는 것은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정치와 정책의 연속성과 지속성 역시 매우 중요하였다.
그것을 안고 넘어 정치로부터 군부를 퇴출해 본연의 위상과 역할을 회복한 것이었다.
패배 후 출국할 때는 현지 대사에게 최고 예우를 지시하였다.그렇기에 역사인식의 정치화는 너무나 위험하다.
이 때문에 근대적 지식인들에게 조선 정부와 청은 근대화를 가로막는 구 세력.이러한 요인들이 서로 얽혀 있으면서 상호 간에 원인과 결과를 제공했다.
문제는 근대적 지식인들이 일본의 근대화가 민주주의적 개혁의 길이 아닌 군국주의의 길이라는 점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이다.결국 이들 중 일부는 나라를 일본에 팔아넘겨 은사금을 받고 일본 군국주의를 위해 청년들을 동원하고 군수물자를 지원하는 길을 걸었다.